믿음의 글

[스크랩] 님비와 핌비는 구원의 갈림길

착한이웃 2006. 5. 22. 20:48
      
      님비와 핌비는 구원의 갈림길


       
      웃음은 환영이지만 울음은 거절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현상이라고 한다.
      내 집 뜰 안팎에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누구의 뜰로 내동이쳐져야 한단 말인가?
      핵시설을 둘러싼 시비는 님비현상의 
      대표적 사례다. 
      핵 폐기물 저장소 인근을 어느 동네보다 
      더 아름다운 경관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는 동산으로 만든 외국사례들을 
      보도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주검이 묻히는 장지를 동네 어귀에 
      경건하고 아름답게 꾸며 생사를
      함께 하는 문화의 나라가 있는가 하면,
      영성과 경건의 상징임을 자부하는 
      성당이나 교회의 앞마당에 묘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만나러 올 때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다소곳한 정원으로
      꾸미는 구라파 동네들도 우리 눈에 선하다.
      님비는 해결책이 못된다.
      해결의 방법은 단 하나, 
      '핌비(pimby: please in my backyard)'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보라. 
      길가에 강도 만난 사람이 있다.
      돌보는 일이 귀찮을 수도, 
      다른 일정에 늦을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제사장과 
      레위인의 경우에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일은 님비의 대상이었다.
      사회적 천민인 사마리아 사람은 
      그것을 기꺼이 핌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스스로도 기쁘고 만인의 모범적
      인간상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님비의 상징이다.
      죄값을 치르는 사형 단두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핌비로 받아들였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사람들과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의 생명을 위해서이다.
      십자가를 님비로 받느냐 핌비로 받느냐가
      멸망이냐 구원이냐의 분수령이다.
      유대인들처럼 그것이 무능의 상징이라 하여,
      헬라인들처럼 그것이 어리석음의 상징이라
      하여 님비 취급하면 구원은 없다.
      힘 없는 자의 힘을 그 속에서 찾고,
      어리석은 자의 지혜를 그 속에서 찾으면
      구원이 있다.
      부활이 바로 그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허무주의와 무신론의 대변자처럼
      생각하는 철학자 니체 조차 
      이런 님비와 핌비의 갈림길인 십자가
      사건을 보고,
      "세상을 바꾸어 놓는 가치관의 전도"라고
      경악했다.
      오늘날 구원을 만드는 핌비의 길은 수없이
      많다. 다만 좁고 찾는 자가 적을 뿐이다.
      

기쁨 가득, 주님의 동산
출처 : 성남총동문기독신우회
글쓴이 : 실로암 원글보기
메모 :

'믿음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력의 비결  (0) 2006.05.25
기도  (0) 2006.05.21
[스크랩] 기도 격언 모음  (0) 2006.05.21
[스크랩] 그가 오실때  (0) 2006.05.21